• [경향신문] 달을 들어내면 하늘에 남는 것 _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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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 21, 2023

    달을 들어내면 하늘에 남는

    2023.02.10 10:35 입력

    [경향신문] 김창길 기자 <김창길의 사진공책>

    출처 :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2101035001#c2b

     

     

    뜻이 좋다고 이름까지 괜찮은 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이 그렇다. 봉천동. 서울 관악산 아랫말 이름이다. 마을이 하늘을 받들고 있는 모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소설가 조경란이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이 싫지는 않았다. 동네 이름이 마뜩치 않을 뿐. 그래서 서울대입구역에 산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관청이 발벗고 나섰다. 2008년 9월1일 행정구역 봉천은 개명했다. 은천동, 행운동, 낙성대동, 중앙동 등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봉천동이 사라질까? 택시를 타고 중앙동에 가자고 하면 기사가 어디인지 몰라 결국 조경란은 봉천동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려야 했다.

    노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말했다. “저 달을 들어내면 하늘엔 뭐가 남겠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저 달을 들어내면 하늘에 구멍 하나 남질 않겠냐. 너는 작가가 아니냐. 모든 사람의 생애는 구멍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있니라. 그 구멍을 오래 들여다보너라.” 고민하던 조경란은 봉천동에 눌러살기로 결심한다. 목수인 아버지가 지은 3층짜리 집 옥탑방에서. 그런 탓에 그의 자전적 단편소설의 제목은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이름을 달았다.

    사진집으로 엮는다면 조경란의 소설보다 두꺼울 것이다. 오는 3월5일까지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는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는 봉천동을 비롯한 서울의 가난했던 옛 동네를 찍은 사진 196장을 펼쳐 놓는다. 네 명의 사진작가 김정일, 임정의, 최봉림, 김재경이 참여했다. 이들은 가난한 동네의 구멍을 오목렌즈를 통해 오래 들여다보았다. 왜 하필 오목렌즈냐고? 당장의 이익을 좇는 근시안으로는 우리 삶을 멀리 내다볼 수 없으므로.

     

    ■김정일, 포클레인에 맞서다

    “1982년 어느 날 신문 지면에, 지금으로 말하면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40여 개의 개발지구가 발표됐다. 투기의 시작이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이 신문 쪽지를 가지고 한 군데씩 지워가며 촬영을 다녔다.”

    사진가의 작가노트는 대학생 시절의 기억이다. 다큐멘터리 사진 수업을 듣던 김정일은 아주 적절한 소재를 신문에서 발견한다. 길음동, 금호동, 신길동, 대신동, 신당동, 장위동, 목동, 묵동, 반포동, 대치동, 압구정동, 도곡동…. 곧 사라져 버릴 장소에 대한 목록은 프랑스 사진가 ‘으젠느 앗제’를 떠오르게 했다. 앗제는 오스만 남작의 도시개발 계획으로 곧 사라져버릴 파리의 구시가지를 낱낱이 기록했다. 김정일의 사진에는 앗제의 것처럼 사람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르다. 앗제는 사람이 필요 없었고, 김정일은 사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낯선 타지 사람이 사진찍을 수 있는 것은 뭘까? 무명씨의 집들을 온전하게 보여주는 것 정도는 양해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일은 열정적인 수집가처럼 가난한 집들의 유형들을 정면으로 사진에 담았다.

    신문과 카메라를 손에 든 김정일은 매봉산 근처에 돌이 많이 박혀 있어 ‘독부리’라고 불리던 마을을 찾는다. 지금은 마을 이름 다음에 타워팰리스라는 영어 이름이 따라붙는 곳, 도곡동이다. 50여 년 전 김정일은 이곳에서 우물이 있는 언덕 위의 집 한 채를 발견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언덕이 아니었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내 집이 있는 곳만 언덕처럼 남아있었을 뿐이다. 위태로워 보인다. 구겨진 함석 슬레이트 담장으로 개발의 광풍을 얼마 동안 막아냈을까? 김정일은 사진 찍을 당시 그곳에서 두엄 냄새가 지독했다고 그의 사진집 <기억의 풍경>에 적어 놓는다.

     

    ■임정의, 골목길을 노래하다

    최근 시를 짓고 있는 사진작가 임정의는 1980년대 서울 풍경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그의 집안에는 그를 포함해 4명의 남자들이 돈 안 되는 기록 사진을 찍었다. 숙부 임석제, 아버지 임인식, 그리고 아들 임준영. 그러니 임씨 가문이 찍은 사진들은 1980년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의 대부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장소를 3대에 걸쳐 기록한 사진도 있다. 선친 임인식이 항공사진으로 남겨 놓은 동대문운동장과 남대문 일대가 그렇다.

    임인식의 항공사진에는 가난한 동네가 없다.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6·25전쟁 이후의 풍경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진가의 길을 선택했던 임정의는 대한민국 건축사진가 1세대로 활동했다. 그는 틈틈이 의뢰받지 않은 건축물의 풍경들을 묵묵히 기록했다. 아버지만큼의 높이는 아니지만, 꽤 높은 곳에서 우리가 사는 장소의 풍경을 담았다. 금호동 산00번지. 그가 사는 곳도 꽤 높은 곳이다. 임정의는 “한국은 없애는 건 잘하지만, 기록은 빵점”이라며 기록 사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쳤던 그는 “자신의 삶 보다 이웃의 삶을 깊이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골목길을 걷던 임정의는 공공장소를 사적인 용도로 활용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골목길 하늘을 가로 지르는 빨랫줄, 통행로에 불법 건축한 작은 장독대, 제맘대로 증축한 난간들…. 하지만 다들 서로 이해했다. 그네들의 집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식구들 몸만 누일 수 있는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임정의는 살가운 장소의 풍경을 기억하며 자기 사진 옆에 시를 적는다. “그림자도 제 길이를 뻗지 못하는 골목길은 매우 한적했답니다.”

     

    ■최봉림의 봉천동 순례길

    가현문화재단 한국사진문화연구소장이자 사진작가인 최봉림은 30여 년 전 찍은 봉천동의 필름을 그 시간의 격차만큼이나 빛이 바랜 세피아톤으로 인화했다. 1989년 봄, 최봉림은 사진가가 되기 위한 훈련 무대로 자기 이웃마을 봉천동을 선택했다. 상도동 종점에서 시작해서 봉천동 끝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순례자의 길 같았다. 1주일에 4번 정도 2년을 다녔으니, 사진가의 얼굴을 익힌 주민들도 있었을 터. 그래서 최봉림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안경을 쓴 개들도 사진가를 알아보고 포즈를 취한다. 수탉 두 마리는 도대체 왜 그리 높은 전봇대 위로 올라갔을까? 폭격을 맞은 것처럼 보이는 마을 공터에 치솟는 불길은 거센 바람에 흩날린다.

    ‘서울 달동네 1990, 봉천동’이라는 제목을 단 최봉림의 사진들은 ‘달동네’하면 흔히 떠올리는 ‘추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훗날 중산층이 되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원도심을 내려다보는 감상적인 시선은 아닌 것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 그리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 이 알쏭달쏭한 상황은 조경란의 <나는 봉천동에 산다>와 잘 어울린다. 최봉림은 조경란의 아버지가 말했던 ‘삶의 구멍’을 사진에 담으려 했다. 사진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일은 관람객 몫이다. 조경란이 최봉림의 사진을 본다면, 단편소설 한두 편쯤은 더 써 내리라는 생각이 든다. 궁금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봉림의 사진 구멍으로 빠져든다.

     

    ■김재경의 침묵하며 바라보기

    건축사진가 김재경의 사진은 골목에서 바라본 주거지의 풍경들이다. 세기말인 1999년과 2010년에 사진을 찍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한다면 비교적 최근의 시간인데, 그보다 더 아득히 먼 시간의 격차가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가 찍은 장소에는 도저히 사람이 등장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유령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그가 찍은 장소는 패망한 고대 도시의 유적지처럼 보인다. 그래, 패망은 예견된 미래였다. 더 높이 솟구치려는 현대 도시의 욕망을 어떤 소시민이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 중세 유럽의 도시를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도시의 공기는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소수의 부르주아지와 임금 노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촌민들은 도시의 성벽 안에 살 수 없었다. 00시티, 00스테이트, 00팰리스, 00캐슬 등 건설사가 만든 브랜드 이름을 단 주소에 전입할 수 없는 서울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골목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으나, 고층 아파트 복도는 아무나 돌아다닐 수 없다.

    김재경의 작가노트에는 “지금까지 휘둘린 우리의 주거, 도시환경처럼 그것이 외양에만 그치는 것은 판타지와 스펙타클 사회를 가속화하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환상에 사로잡혀 외면하는 누추한 공기감”을 사진에 담으려 했다. 높이와 모양새가 다른 계단,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암석, 삐뚤고 휘어진 가정집 외벽으로 만들어진 골목길 사진들은 촉각적이다. 건축물의 무게감도 피부에 와닿는다. 그의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소리다. 마치 침묵의 시간이 봉인돼 있는 장소에 들어와 있는 듯한 장소감이 느껴진다. 쉿! 입을 다물라! 그리고 삶의 장소를 온전하게 바라보라! 김재경은 자신의 사진에 ‘mute’라는 제목을 단다.

     

    ■고요를 명령하라

    뮈에인(myein). ‘신성하게 하다’는 뜻의 그리스어다. ‘맺다’, ‘닫다’에서 유래했다. 성스러운 예식은 신의 전령이 고요를 명령하며 시작된다. 철학자 한병철은 “고요는 특별한 수용성, 심층적이며 관조적인 주의집중과 짝을 이룬다”고 <리추얼의 종말>에 적는다. 그는 루이 다게르가 1939년경 찍은 프랑스 파리 탕플 대로의 풍경 사진을 예로 든다. 변변치 않은 초기의 사진술은 상당히 긴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고, 고요히 있는 것들만 남아있다. 한병철이 말하는 “관조적인 주의집중”은 이처럼 “길고 느린 것에 대한 지각”이다.

    김정일, 임정의, 최봉림, 김재경의 사진이 한데 모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삶의 장소를 신성하게 바라본다. 30여 년 전 찍은 필름들을 버리지 않고(김정일, 최봉림), 3대에 걸친 사진 아카이브를 수집하고(임정의), 묵언을 수행하며 골목길을 걷는 일(김재경)은 모두가 일종의 고행이며 ‘리추얼(의식)’이다. 리추얼은 반복되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한다.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는 리추얼을 필요로 한다. 다시 한번 ‘뮈에인’의 뜻을 되새겨 본다. 쉿! 전령은 고요를 명령한다. 진실은 고요 속에서 나타날 것이다.

     

  • [조선일보] 그림으로 사진으로… 사라진 서울, 작품이 되다 _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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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 21, 2023

    그림으로 사진으로… 사라진 서울, 작품이 되다.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_2023.0201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art-gallery/2023/02/01/5WPRRC3KXFCDRCPJ3D5MRMWFXA/?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쇠락한 건물 그리는 화가 정재호

    후미진 계단 찍는 사진가 김재경

     

    풍경(風景)은 변한다. 바람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사라지기 직전의 형상을 미술로 포착한 두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소멸하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안간힘. 기억하려 기록한다.

     

    * 이것은 흉물이 아니다 _ 정재호 2022년작 유화 ‘모습’(194×130.3㎝). /초이앤초이 갤러리

     

    동양화가 정재호(52)씨는 서울의 쇠락한 건물을 그려왔다. 낡은 아파트는 한국 현대사(史)의 그늘 같은 것이었다. 사회 비판적 맥락을 늘 동반했다.

    그러나 지난해 철거된 세운상가 일대 을지로 골목에서 정씨는 풍경으로서 존재하는 골목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과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자주 만나다 보면 다른 면모를 알게 되잖나. 특정 코드로만 접근하면 선별적으로 보게 된다. 사실 아무도 을지로를 풍경 자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풍경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곳을 풍경화라는 풍부한 볼륨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이후 동네의 사실적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곳을 둘러싼 개발과 보존의 오랜 대립을 걷어내고, 삶의 근거로 바라봤다. 날씨나 계절에 따라 동네는 달라졌다. 지난해 구정, 아침 일찍 눈이 내렸다. 세운상가 2층에서 예지동 시계 골목을 바라봤다. “아, 여기가 소거됐구나…. 이 건물이 눈을 맞는 건 마지막이겠구나.” 벗겨진 흙 위에 최후의 랜드마크처럼 선 6층 규모의 분홍 건물을 ‘모습’(2022)으로 남겼다. 사라졌으나 그림으로 남아있다. “어디에 어느 건물이 있었는지 지도처럼 선명하다. 빈 공간을 기억이 채운다.”

    서울 삼청동 초이앤초이 갤러리, 25일까지.

     

     

     

    * 길의 주름, 계단이 되다 _ 김재경 1999년작 사진 ‘Mute-27-옥수동’(38×25㎝). /서울대학교미술관

     

    건축사진가 김재경(65)씨는 20여 년 전부터 후미진 서울의 계단을 촬영해왔다. “산이 많다 보니 서울은 수직의 구조가 많다. 오르내리는 삶의 장면이 많다. 잘 살아보기 위해, 성취하기 위해 디뎠던 고단한 발걸음이 많다. 나는 계단이 그 희망의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1999년 옥수동에서 촬영한 계단처럼, 계단은 생활의 여러 갈래를 드러낸다. 높낮이 다른 들쑥날쑥한 직각의 콘크리트 요철이 좌우에서 각자의 길을 형성하다 이윽고 위에서 만나 하나의 계단이 된다. “하나는 내 계단, 하나는 네 계단. 아마 건조 시기가 달라 이런 형태일 것인데, 결국 합쳐진다.” 계단에도 조형미가 있다. 1999년 하월곡동에서 마주한 주택가 계단은 마치 미국 설치미술가 도널드 저드의 서랍 형태 작품처럼 보인다.

    계단 사진 연작 ‘Mute’는 세기말 시작됐다. “21세기에 대한 핑크빛 전망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어느 날 금호터널을 지나다 건물이 헐리는 장면을 봤다. 새집을 짓는 건 희망찬 일이지만, 헌 집은 어떻게 되는가….” 기록하기 위해 2~3개월 동안 황급히 서울을 누볐다. “보통 건축 사진은 세련된 건축 디자인을 위한 것이다. 나는 삶 속에서 형성된 디자인을 찍고 싶었다. 늙으면 누구나 주름살이 생긴다. 그것도 그대로 아름답지 않나.”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3월 5일까지.

  • [사진전]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_2023.1.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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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 11, 2023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

     

    2023년 01월 13일 - 2023년 03월 05일 

    전시실1-4, 코어갤러리 

     

    “불모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푸 투안)

    “불모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지리심리학 분야의 개척자 이-푸 투안(Yi-Fu Tuan)이 말합니다. 이-푸 투안은 사막에서 “정신과 영혼의 관대함”을 마주했던 경험에 대해 들려줍니다. 한때 풍족함을 누리며 살았던 필리핀과 파나마 제도에 진동했던 “부패와 죽음의 냄새”와는 대조되는 순수와 영원의 느낌을 그는 사막에서 마주합니다. 나는 최봉림의 카메라에 담긴 상도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어지는 달동네 능선에서 이-푸 투안이 사막에서 가졌던 것과 같은 것을 느낍니다. 사람에게 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 되는 삶의 터전으로서 공간에 대한 장소애(場所愛), 곧 토포필리아(Topophilia) 말입니다.

    하지만 1960, 70년대 미국인들은 경관에서 경기 호황을, 장소에서 자원과 도시재개발을 보았고, 그때부터 토포필리아는 빠르게 사라져갔습니다. 한국인들도 삶의 터전을 시(詩), 이웃, 놀이, 기쁨, 순수로부터 떼어내는 슬픈 연대기에 가담했습니다. 임정의는 “나의 삶 이상으로 이웃의 삶을 바라보는 방법으로서의 사진”을 선언합니다. 그 이웃이 겪게 될 운명이 김정일 사진의 미학적 막을 형성합니다. 1982년 그러니까 40여 개의 개발지구가 발표되던 그해, 미증유의 부동산 투기가 시작되었고 빈부의 격차가 통제불능으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에서 삶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특정한 양태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공동체인 이웃의 개념은 도시재개발의 명분 아래 소멸의 과정에 들어섰습니다. 공간을 보는 시선의 저온화, 인식의 저하가 그 뒤를 이어 야기되었습니다. 장소를 ‘누추한 환경’이나 ‘저소득층의 주거’로 잘못 계층화하고, 기억에서 삭제하는 인지적 자학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었습니다.(김재경) 인간이 땅과 맺는 관계는 분열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뮈에인, 내마음속의 오목렌즈》전이 마주하는 진실의 한 자락입니다.

    우리가 휴식을 노동보다 하위에 둔다면, 우리는 신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한병철) 삶의 장소를 자원과 재개발보다 하위에 두는 것, 고통-가난을 포함하는-을 물질적 풍요의 하위에 두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인은 신적인 것, 곧 우리 삶의 뮈에인(myein), 곧 신성하게 하기에서 분리되어 왔습니다.

     

    “개발과 배움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달라이 라마)

    “개발과 배움이 어느 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달라이 라마(taa-la’i bla-ma)는 권합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음에 대한 진단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근시안으로는 그런 작업에 임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포함하는, 멀리 내다보는 인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더 넓은 전망(展望)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근시안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 마음속 오목렌즈의 배율을 더 높여야 합니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길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같은 길입니다. 이 신성한 앎의 길에서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전에 할당된 작은 몫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해주신 김정일, 김재경, 임정의, 최봉림 작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심상용 /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myein’은 ‘신성하게 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 [allure] 서울, 30년 _ 20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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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15

    서울, 30년

    건축 사진가 김재경은 지난  30년 동안 의연하고 정직하게 서울의 건축물을 기록해왔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과 역사를 오롯이 담고있는 그 건축물들을 김재경의 사진으로 다시 만났다.

    --->  서울-30년

     

    [ALLURE] 2014년 07월호 / 조소영 피처 에디터

    발췌+출처 : http://www.allurekorea.com/2014/07/24/서울-30년/

  • [포토닷] Commercial Photographer 건축 사진가 김재경 _ 20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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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15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 

    건축 사진가 김재경이 상업 사진가 인터뷰에 적합한가를 놓고 조금 고민했다. 근래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그의 행보는 전시와 출판을 통해 작가로서의 면모를 굳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장르가 패션이나 프로덕트 사진과 달리 상업적인 성격이 약해 순수와 상업의 경계에 있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김재경은 20년 가까이 우리 전통 건축의 심미성 탐구, 해체와 구축의 도시화 현장을 과묵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는 국내의 유일무이한 사진가이기도 하다.

    발체+출처 : http://blog.naver.com/photodotb?Redirect=Log&logNo=220071567469

    [포토닷] 2014년 04월호 / 김윤수(자유기고가)

  • [한겨레] 익숙한데 새로운 한국 도시의 저 풍경들을 보라 _ 20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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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15

    익숙한데 새로운 한국 도시의 저 풍경들을 보라  

    프로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남이 의뢰한 작업 말고도 언제나 자기 자신이 클라이언트가 되는 작업을 늘 병행하는 사람이라고.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프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은 프로라는 느낌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기가 좋아서 찍을 뿐이란 담담한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 같다. 어느새 그가 찍은 풍경들 중에서 상당수가 사라졌고, 그의 작업은 기록이 되어가고 있다.

    발췌+출처 : http://blog.hani.co.kr/bonbon/48748 

    [한겨레] 구본준 기자

  • [한겨레] 주변과 조화 이루는 건물의 온기 포착 _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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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15

    [문화'랑'] 나도 문화인(24) 건축전문 사진가 김재경씨

    “설계사무소들이 원하는 프레젠테이션 패널용 변형 사이즈 사진을 손작업으로 뽑아주면서 건축사진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본 건축잡지에서 요시오 후다카와의 사진을 보면서 독학을 하고, 쉬는 날은 틈틈이 근대 건축물 사진을 찍었다. 건축사진가로 본격 데뷔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아니, 지금 와서 보면 운명적인 건지 모른다.

    발췌+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11222.html

    [한겨레]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DCM] 포토그래퍼 김재경 _ 20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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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30, 2015

    사진으로 드러내는 건축의 윤리성

    건축사진은 보편적으로 작가 개인의 작업이 아닌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촬영된다. 마치 카다로그 속에 등장하는 제품들처럼 건축사진은 건축가의 의도를 이미지화 하여 드러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  외부 환경과 문화, 사회적인 흐름 등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발췌+출처 :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108&contents_id=27935 

    [DCM] 김범무 기자

  • [효형출판] 셧 클락 건축을 품다 _ 201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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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y 24, 2015

    사유하는 카메라의 인문학적 건축 읽기

    사물과 삶이 음영을 투사하는 건축사진가의 현장 노트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으로 공간과 건축, 인간의 풍경을 렌즈에 담아온 건축사진가 김재경의『셧 클락 건축을 품다』가 출간되었다. 1994년 개인전 <건축사진>을 시작으로 다수의 전시회와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그는 1998년 월간 <POAR>가 꼽은 ‘11인의 주목받은 건축인’, 2003년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주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셧 클락 건축을 품다』는 25년 경력의 프로 건축사진가로서 그가 만나온 다양한 건축의 얼굴들, 우리네 삶의 풍경과 이웃하고 있는 건축의 의미를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쉽게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우리 시대 건축 환경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미래 건축의 희망을 담은 사진을 제시하며 사물과 삶이 만나 공존하는 지점을 찾아 나선다. 건축사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건축사진가의 현장 노트’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촬영 노하우와 에피소드, 건축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제목으로 쓰인 셧 클락(shut clock)은 농구 경기의 공격 제한 시간인 24초를 재는 시계 샷클락에서 차용한 조어로, 사진의 순간 포착이라는 한시성과 결정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지은이: 김재경 / 펴낸곳: 효형출판 / 펴냄: 2013년 3월 18일

    출처:http://hyohyungbook.cafe24.com/front/php/product.php?product_no=208&main_cate_no=1&display_group=3

  • [한국일보] 사진작가 김재경의 서울 골목길 _ 20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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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y 24, 2015

    [오늘의 명작, 그곳] <17> 사진작가 김재경의 서울 골목길

    어르신도 아이들도 없는 텅 빈 골목길… 한때 존재했던 공동체를 추억하다

         - 건축사진가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의 골목길

         - 1970년대와 2000년대 골목길은 무엇이 다른가

    김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빨랫줄로 문이 잠긴 초록 대문을 가리켰다. “여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거예요, 아마. 앞집 할머니가 좀 봐주셨던 것 같은데….” 여러 번 오가던 동네라 주민 소식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모양이다. “달동네엔 형편이 넉넉지 않은 독거노인들이 방 한 칸 얻어 월세를 사는 경우가 많죠. 도시가 말끔하기만 하면 이런 분들이 깃들 곳이 없는 거죠.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될수록 원주민은 변두리로 밀려가고, 그러면 계층의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현장에서 목격하듯, 2000년대의 골목길은 확실히 1970년대의 그곳과는 다르다. 사진으로도 변화는 여실히 읽힌다. 1960년대 후반부터 30여년간 중림동, 행촌동 등을 돌며 골목길의 정감 어린 풍경을 담아낸 사진작가 김기찬(1938~2005)은 골목길 사진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골목에서 고향과 따스한 인간의 본성을 목격했다”던 그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텃밭을 가꾸고, 빨래를 말리는 골목이 스쳐 가는 통로가 아니라 놀이터이자 생활의 연장임을 보여줬다. 유년시절을 골목길에서 보낸 이들이 추억하는 골목은 대개 이런 모습이다.

    그러나 김씨의 사진 속엔 사람이 없다. 텅 빈 골목길에선 적막감, 심지어 상실의 공허함마저 느껴진다. 그가 골목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진평론가 진동선씨는 <한 장의 사진 미학>에서 김재경의 사진을 이렇게 평한다. “그것은 한때 삶의 유대로서 존재했던 우리의 공동체성의 해체이며 상처받은 어제의 신뢰에 대한 신화적 상징이기조차 하다. 한쪽을 비추어서 나머지 한쪽을 알게 하는 사진, 바로 김재경의 사진이다.”

    그의 사진은 현대의 골목길을 반영한다. 머무름보다는 떠남이 익숙한 시대, 이웃과 마음 터놓고 지낼 수 없는 각박한 세상. ‘커뮤니티를 상실한 골목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란 질문에 그는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 공동체 해체에도 남은 이야기성

    “인사동을 풍부하게 만든 건 잎맥 같은 골목길이죠. 그런데 넓은 길에 있는 인사동 쌈지길은 또 하나의 골목길 풍경을 만들어요. 보통 상업지구는 눈에 띄기 위해 밖으로 도드라지게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 통념을 깼죠. 오히려 안으로 쑥 들어와 가게가 뱅 둘러 있고, 뱅뱅 돌며 3층까지 이어지죠. 입구가 일종의 사람을 빨아들이는 구멍인 거예요. 이런 형태는 무심코 지나칠 것 같지만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네를 풍성하게 하죠.” 해체된 공동체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에 대한 그의 답변인 셈이다.

    골목길에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골목길에 오면 평온함을 느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는 어떤 대상을 주목하기 어렵지만 떨어져 있으면 그 대상의 빈자리를 바로 눈치채게 되잖아요. 골목길 역시 마찬가지예요. 낙후된 주거지 개선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췌+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2245309

    [한국일보] 글.사진 : 이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