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원도심 동래, 자성대와 부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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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 25,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6

     

    날이 저물어 영도다리 아래서 배낭을 챙겼다. 생약 파는 점포 안에서 두 남자가 막걸리 병을 내려놓으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

    크레타 섬에서 지중해 주변 도시국가로 번진 힘이 동쪽으로 움직였다. 그 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은 인도에서 멈췄고, 아시아 극동지역에서 또 다른 힘이 솟구쳤다. 거꾸로 보면 일본이 대륙을 향한 길에 조선이 놓였고 그 길목이 부산지역인 것이 화근이었다. ... 자원이 넉넉했던 부산富山이 가마솥 모양釜의 산山 아래 부산포의 장소성(경제, 외교, 군사)을 강조한 부산釜山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일본은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통일(1580)하자 힘을 국외로 돌려 조선을 침탈(1592)했다. ... 그 즈음의 부산은 "전체가 네 개의 구역으로 뚜렷이 구분된 도시”.* 즉 초량왜관의 일본인 전관거류지(1877), 동래읍성 지역, 영선산 일대의 유럽인 거주지, 조선인 토착민들이 거주하는 부산진 포구를 뜻했다. 용두산(송현산) 동편과 서편에 걸쳐 있었던 초량왜관, 조선시대 왜인 통제를 위한 구역이며 동관 3대청(관수옥, 개시대청, 재판옥)과 빈번소 등 관청 건물이 해안선을 따라 위치했다. 개항기에 일본인 거류지로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통치의 중심지로 산 정상에 '부산신사'를 두었다. ...

    "흰 모래 푸른 솔의 해안, 종일 파도 뿐인" 삼천삼백여 명(1876)의 작은 어촌이 근대적 항구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 그리고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허망한 꿈은 패전으로 끝이 났다. 해방이 되고 인구 28만(일본인 5만명 귀국)이 오십만(1948)을 넘어서지만 상공업이 마비된 이 기간의 부산은 콩나물 시루 같았다. ... 이런 판자촌 대화재(1953)로 부산우체국, 부산역, 부산일보, 부산방송국을 포함한 공공건물과 삼천여 채의 집이 타서 없어졌고 육천세대 삼만여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

    폭이 넓은 복도에 평상까지 놓여, 마치 한가한 동네의 골목을 닮은 영선아파트. 마늘이 담긴 양파자루와 시래기는 벽에 매달려 있고 주민들은 한담을 나눈다. ... “부산의 원도심은 동래입니다.” 그는 동래사람이었고, 문화적으로 ‘상혼’이라는 말이 동래부를 우위에 두고서 혼사를 논했던 옛날식 표현이고 보면 이처럼 제 고장 사람들의 자부심을 잘 드러낸 표현도 없을 듯했다. 양피지 위에 덧쓰여진 글처럼 땅과 사람과 시간이 직조한 무늬를 따라서 초기 부산의 도시구조를 살펴 보았다.

    * Charles Louis Varat(1842~1893) : 프랑스 여행가, 지리학자, 민속학자

    참조 : 임진왜란(이장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산포해전의 승리요인과 위상(임원빈. 이순신연구논총 제32호), 한국의 발견 부산(한창기. 뿌리깊은 나무),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김민수. 그린비), 팬저의 국방여행(http://panzercho.egloos.com)

    _no.76 《와이드AR》 2021년 05-06

  • 종삼(鐘三)의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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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8,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5

     

       얼었던 흙에서 기운이 솟아 오른다. ... 자연의 신비는 수수께끼나 사람의 도시는 동력이 필요하고 연소재로 물질을 태워야한다. 오래된 골목길에 다양한 상권을 지닌 도심지 구역이 변신의 과정에 있다. 반세기에 걸친 쇠퇴의 길에서 벗어나려는 탈각의 진통이다.

       한성과 서울의 중추 종로거리의 성쇠는 강남시대의 부흥과 반비례하는 도시역사를 공유한다. ... 2차 대전 시기 공중폭격에 대비한 ‘소개공지’를 조성했다. ...그 해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이다. “종묘 앞에서 필동, 경운동~종로의 소개도로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판자집이 들어 찼으며 ... 이 곳을 중심으로 종로 2가~5가 일대는 ‘종삼’(鐘三) 또는 ‘서종삼’ 이라 불렸다.”(손정목) ... 한 눈에도 추레하게 보였던 이곳을 중구청이 나 서서 정리를 위한 기획안을 세웠다.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시장의 추진력은 불도저 같은 힘을 발휘했다. ... 현대상가아파트의 준공(1967)은 앞으로 “서울의 상가경기 중심지는 그동안 종로-명동-소공동-무교동의 순으로 이동을 거듭, 멀지않아 이 (세운)상가아파트지역으로 옮겨 갈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동아일보) 그러나 연쇄상가, 백화점식상가, 아파트로 구성된 세운복합상가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 설상 가상 용산에 전자상가가 들어서면서 부터는 세(상의 기)운이 더욱 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사회 초년시절 회사에서 필요한 사진용품이나 전자부품을 구하러 나오던 종로3가는 내게 익숙한 곳이다. ... 세운상가 양편의 동네 종로3.4가 장사동 예지동 입정동 산림동 초동 인현동 을지로3.4가 충무로 일대는 골목이 잘 보전되어 다양한 업종과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 선형적으로 흐르는 역사의 시간에 성공과 좌절의 기록은 그 시대 뿐만이 아니라 후대에 교훈을 주며 여기엔 개인의 기록도 편입되기 마련이다. 부침의 흔적을 읽어 지난 시기를 재구성해 미래를 그리는 점에서 역사는 우리의 선생이다. ... 보전과 부분적 개발은 과거와 현재의 화해다.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다. 남은 과제는 한 쪽이 밀려나지 않도록 신의를 잃지 않는 일이다.

    _no.75 《와이드AR》 2021년 01-02월호

  • 도시마을, 덕천동과 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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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8,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4

     

       안양천과 학의천 합류지에 있는 안양7동, 그의 일부 덕천마을은 지금 없다.... 여기서 뛰놀던 아이들과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벌써 배경이 희미한데 이 마을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들이 궁금했다.

       과천군 하서면 안양리(조선시대)는 안양사安養寺(만안구 석수동)에서 지명을 얻었고, 철도 경부선(1905)이 놓이자 안양역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했다. ... 그래서일까 이 곳엔 유난히 특이한 건물이 많았다. 유형 뿐만이 아니라 건축법의 저촉없이 지어진 건물은 실물이 아니라면 때가 될 때까지 사진으로 남겨야할 이유는 충분했다.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 속에서 다시 복원되어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드러나는 “역사의 기원”(벤야민)처럼 ...

       재개발 시한이 다가오자 마지막 겨울채비로 김장을 담그던 이도, ... 최강의 한파로 모두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덕천마을의 한 청년이 문앞에 쌓인 눈을 치우려 빗자루질 한다. "내집 냅둬!" 그 행위가 사람이 산다는 표시에 다름 아닌데 입은 옷이 너무 허술했다. ... 그 무렵부터 집들이 헐려나가기 시작 하자 길냥이들의 밥차가 들어왔다. ... 이처럼 인심있는 도시마을들이 개발논리 앞에 설 곳을 잃는다. ‘난쏘’에서 보았던 산업화의 어두운 면처럼, 마치 역사의 비극이 또 다른 소극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

       ... 지대의 상승은 개발이익이 반영된 것이며 필경 그 주변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 주거비용이 실제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현실적 장벽 앞에 다주택 소유자가 아닌 한 내집은 현실의 삶을 살아야하는 곳이며 무주택자의 시름은 깊어질 뿐이다. 때문에 재산가치에 대한 환상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며 진정 모두를 위해서는 납득할 만한 수준이 좋은 것이다.

       근대는 투명한 과학적 사고로 무장해 세계를 균질하게 나누고 밝히며 문명에 일조했다. 이성과 합리적 이해로부터 누락된 야생의 사고는 비과학의 처지로 내몰리는 수모를 겪었고, 그렇게 쌓아 올린 세계는 아성이 되었으며 끊임없이 새 것으로 머물지 못할 때 근대(모더니티)가 아니듯이 쇠락을 피치 못하는 사물의 운명은 근대성의 숙명과 어느 정도 닮았다. ... 개개인의 성취와 성공의 원인인 꿈은 미래를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또 꿈은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일종의 환상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효과(환등상)로 기능하며 유토피아적 소망상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집합적 꿈(의식)이 나타난 세계로서 우리 사회는 지금 부동산 중증에 시달리는데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 속에서 각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강남풍 의 미몽에서 깨어날 '집합적 각성'을 생각해 볼 때이다. 

    _no.74 《와이드AR》 2020년 11-12월호

  • 주거의 조건과 젊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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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8,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3

     

       집 값이 너무 오른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시세가 뛰면 덩달아 타지역의 집 값이 오르고 못가진자들의 내집마련 꿈은 점점 시들어 간다. ... 새내기의 결혼 기피현상으로 인구는 줄고, 부차적으로 주택수요가 안정될 긍정적 요소가 있지만 향후의 재건축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는 동력(사업성)을 잃는 순간 아파트단지의 슬럼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 후 재건의 시대에 도시 서울로 몰려드는 시민들을 위한 주택이 부족하자 관이 주도해 급히 추진했던 주택공급의 유형인 통칭의 시민아파트는 부실하게 지어졌다. ... 이 붕괴사고는 그때까지 논의 되던 강남개발에 불을 지펴 한강의 남쪽 '영동지구 신시가지 계획'을 시작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이 민간건설회사의 참여로 추진되었다. ... 부동산인 주택을 사고파는 것이 문제라 할 것은 없지만 분명 차이점이 있었는데, 대규모 단지형아파트가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에서 향후의 삶(주거)은 사소해지며 물품(주택) 으로 취급될 위험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집은 최소한의 거주권에 기대어 적정 한 비용을 치루고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거주권은 숭고한 권리이며 주체가 자기 존재를 소유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 미래의 도시가 현재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지는 정확히 알 수없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공간 사용의 방식이 가져올 주거와 이동의 변화는 초공간의 방식과 체계로 옮겨갈 듯하며 ...한 공간에서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채 인식을 주도하는 세계이며, ...

       타국의 도시 인상이 호감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남방 기후대의 건물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 양감이 돋보였고 ... 우리의 인식이 경험으로부터 형성되고 특정한 도시 이미지로부터 그 도시를 인지한 것이라면, 이런 도시에서는 역사와 꿈이 행복하게 공존할 것이며 노인과 아이도 함께할 것이다. ... 주거(택) 문제로 인한 사회적 분열보다 조건에 따른 관습이 있고 상식이 앞서는 사회이다. 마치 삶이 부동산에 저당 잡히기 전의 모습, 그 삶에 햇살이 깃드는 모습일 것이며, 주거의 조건을 물을 수 있는 곳에서 젊은 미래의 꿈은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_no.73 《와이드AR》 2020년 09-10월호

  • 오월동주_7월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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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8,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2

     

       유례는 있었다. 중세도시 피렌체에서 처음 발병한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창궐해 당시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간 일이나. 근세기 초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 전역으로 번져 각각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최근 10여 년간 동시대인 들이 바이러스의 무차별적 감염으로 부터 받는 시달림은 사뭇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다가온다. ...

       회전력을 잃으면 넘어지는 팽이처럼 성장이 멈추는 순간 쇠락하는 운명을 지닌 대도시. ... 산업시대에 편중된 시민의 주거지 정비는 거주민 스스로 짓고 살기보다 입주하는 곳이 되었고 ... 난개발이 반복되던 도시주변은 늘 어수선 했으며 두서없이 보이는 건물에서 각각의 이해는 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이 그동안 밀쳐진 건축의 상징성 회복에 대한 선언이듯 빛과 그늘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짝을 이룬다.

       ... 원래부터 조형적이라 할 건축의 구축성이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물질의 영역을 떠날 수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 지난 시대 보편적 인간의 역사에 대한 기획이 동력을 잃자 전환점이 되어 탈근대의 문턱을 넘었으나 이 역시 각론의 차원에서 서로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

       사진에 보이는 상징적 건물은 필름이 아닌 인화지로 찍었다. 일종의 캘러타이프(Calotype)로, ...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병치시켜 또 다른 혼돈을 가장해 의식의 빈 공간을 초대했다. ...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 ‘COVID-19’가 판치는 시대를 지나며 어쩌면 우리는 유동적 사태와 상황을 보면서도 여전히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려는 오류에, 사회적 피로감 아래 질문보다는 답에 안주하는 삶을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오월동주', 어려움 앞에 원수도 협력하는 상황을 떠올려 시대를 건너는 힘이길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 실존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_no.72 《와이드AR》 2020년 07-08월호

  • 단관극장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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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8,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1

     

       눈이 소복이 쌓이면 아이들은 신이 난다. 놀이에 빠져 덩달아 뛰며 개와 아이들은 신이 난다. ... 깃발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출연자들이 중심에 서서 공연을 알리는데 유랑 서커스가 들어와도 비슷했다. 입장객을 정리하는 통로가 그 역할을 못 하면 질서유지를 위해 극장 매표원(기도주임)의 막대기가 애들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 그리고 번들거리는 비로드 천은 일상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개그나 신파극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지방 소읍의 옛 풍경이다.

       동양적 외모에 강렬한 눈빛의 배우 율 브리너, ‘왕과 나’를 국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보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 없다. 금성극장(남영동)의 ‘황야의 무법자’, ... “추억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상상력이 추억 즉 과거의 이미지를 그것이 지향하는 바, 원형으로 변화시켜 나가기 때문이다.”(가스통 바슐라르)

       극장을 영화관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은 시대를 반영한다.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에 걸쳐서 정치국(丁致國)이 인천 경동에 민간극장 협률사(協律舍. 1895. 현재 애관극장)를 개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강화도조약(1876) 후 제물포에 조계(거류지)가 설치(1883)되자 중국, 일본 등 외국인의 거주와 영업이 번창했다. 따라서 권번 기생들의 춤과 명창 판소리, 곡예 등 전통연희를 여는 복합공연장이 문을 연 것은 발빠른 문화사업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

       첫 영화관이라 불리는 단성사(1907)가 종로에 들어섰다. 특히 지방 소도시 극장들은 공간 대관사업의 비중이 높았는데 ... 이러한 단관극장의 수는 60년 대에 제일 많았고 70년 대부터 점차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 얼굴(파사드)을 고치기 시작했으며 극장 전면을 덧대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리고 ... 비록 지난 시절 통제와 검열, 문화를 앞세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열장으로써 생존을 위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관 극장은 ... 이런 바탕에서 꽃을 피운 것일까, 최근 영화 ‘기생충’의 쾌거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의 영화적 실천으로 시작한 한국영화에 자긍심으로 충분하며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남을 의식하던 처지에서 그 역할 이 뒤바뀌는 시절을 사는 지도 모를 일이다.

    _no.71 《와이드AR》 2020년 05-06월호

  • 화성華城에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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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7, 2021

    김재경의 PHOTOSSAY 10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에서 아름다움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이처럼 존재는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어떠하든 모두 그럴만한 당위를 볼 수 있고 ... 그러나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저’가 벌레로 변하고 이에 놀란 가족들의 반응이 초자연적인 현상 자체보다 이런 비극이 그레고르에게, 또 자신들에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인 것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

       화성華城(수원성)은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성곽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뒤주 속에 갇힌 아버지 목숨이 꺼져가는 것을 생생히 보았던 아들. 그리고 자결을 명했던 영조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던 사도세자. ... 이 도시의 시전市廛에서는 특정 상인의 독점권(금난전권禁亂廛權)을 없애 보부상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상업이 번성하고 사람들이 몰려들도록 했다. ... 중세시대의 폐쇄된 도시가 아닌 근대적 도시로의 신도시였던 것이다.

       90년 대 들어서며 수원이 원천, 권선, 영통, 화서, 정자, 매탄지구 등지의 택지개발을 하며 공간.지리적 변화의 폭을 넓혀갈 때에 상대적으로 원도심은 발전이 정체되었다. ... 이런 변화의 바람 아래 최근 이 지역의 거리풍경이 바뀌고 있다. ...

       신풍新豊로 일대의 테마거리에 붙여진 별칭 행리단길(경리단길 망리단길 황리단길 객리단길)은 오늘도 사람들을 부른다. 조용했던 가게들에 손님이 넘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처럼 사람들로 시끌벅적 북적이는 모습이 애초에 정조께서 바랐던 수원의 모습이었다. 모쪼록 동서를 아우르는 바람風이 불어서 상업이 번성하고 사람이 살기에 좋은 도시로 변화하길 기대한다.

    _no.70 《와이드AR》 2020년 01-02월호

  •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운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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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7, 2021

    김재경의 PHOTOSSAY 09

     

       한양도성의 내사산(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가운데 가장 낮은 낙타산(낙산) 기슭에 자리한 종로구 창신동은 청계천 지류(永美亭洞川)의 물길을 지나는 지하철 6호선 동쪽의 숭인동과 이웃한 동네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5부 가운데 동부의 숭신방과 인창방이 있던 곳이며 글자를 조합해 ‘창신동’과 ‘숭인동’이란 동명이 되었다. ... 근래에 창신동에 재봉틀 소리가 줄어듦은 서민 삶의 단편을 드러내며 대도시 서울을 압축해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 초, 세종과 문종이 연이어 승하하자 단종(12세)이 즉위했으나 왕실보다 신하들의 역할에 힘이 실렸다. ... 단종의 유배 길에는 영도교 너머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송 씨는 매일같이 그의 안위를 동망봉에서 빌었고, ... 이렇듯 창신동에는 지역에 얽힌 이야기가 깊은 곳이다. 

       ‘뉴타운개발’은 ... 앞서 재정비촉진사업으로 대규모 도시정비를 추진했으나 해제가 취소된 지역은 창신.숭인지구가 처음이었다. ... 고지대의 돌산마을에는 전망대와 어린이공원, 소통공작소 등 굵직굵직한 도시재생 기반시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도서관, 마을회관보다 도로확장과 주차장을 바랬다. ... 넓은 길보다 좁은 길로 가는 일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운 공존이며 결국 모두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다.

    _no.69 《와이드AR》 2019년 11-12월호

  • 영조營造, 보이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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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7, 2021

    김재경의 PHOTOSSAY 08

     

       집에 의미가 담긴 일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다. ... 한옥을 짓는 일에 돌과 나무와 흙이 필요하고 주재료인 목재는 형태를 규정하는 요소이다. ... 바닥을 정해 벽을 세우고 별을 본다. 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로 살아 있음을 또는 죽음을 느끼게 한다.

       개심사 해탈문 아래에 직사각형의 못이 있다. 물 밖으로 내민 바위에 경지鏡池라 쓰였고  ... 윤증고택의 안채는 내밀하여 발길이 뒤꼍으로 ... 심검당尋劍堂(지혜의 칼을 찾는 집)은 스님 공부방이라 ... 의성김씨종택 문간채를 들어서자 안채와 왼편 깊숙이 2층 사랑채가 보이는데 ... 우화루(영선암)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은 경외심의 표현으로...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중 마을 같은 선암사는 ... 남도 사람들의 푸근한 서정을 깨우는 각황전은 돌덩이처럼 유별나게 굳건하다. 

       ... 사물에 깃든 사연이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예술은 인간 공통의 관심사인 것이다. 조선시대 막사발이 손으로 뽑아 올린 노동의 산물이라 해도 인간의 심미안과 실행이 정신과 몸의 불일치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 했던 사진이다.

    _no.68 《와이드AR》 2019년 9-10월호 

  • 사라진 건물, 조선총독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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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07, 2021

    김재경의 PHOTOSSAY 07

     

       국립중앙박물관의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지역이었다. 여기의 사진은 몰래 찍은 것이며, 이 작업은 계속되지 못했다. 감시카메라가 없던 시절이었다.

       일제 강점기(1910~1945) 조선에서 일본 제국의 식민통치를 시행한 조선총독부는 청사 건립계획(1911)을 세우고 착공(1916)에서 준공(1926), 입주(1927)와 조경을 끝으로 완공(1928)했다. ... 해방이 되자 미군정 청사인 중앙청(Capital Hall)으로 쓰였던 ...

       시대의 사건들이 모인 역사 아래 낱낱의 사건은 객체일 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 건축은 시간을 담는 공간을 지어 삶을 담아내는 것이다. 건축은 정신적인 소산이며 한 순간의 완성된 물체가 아니기에 물질로만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소녀상의 철거에 그토록 목을 매는 사례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 낱의 상징물을 세우지 못하도록 국가가 주도해 방해 공작을 편다. 남의 나라를 탐했던 염치도 없이 독도를 자기 것이라 생떼를 쓰는 일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건 현장의 증거를 없애고 그 다음 주장으로 이어질 수순이 보이지 않는가. 보편적 이해를 결여한 민족주의를, 역사의 한 순간만을 떼어 유리하게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때 우리가 철거했던 그 건물은 비록 뼈아픈 상처일 것이지만 남겨야 했고 스스로 무너져 흙이 되도록 그 자리에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_no.67 《와이드AR》 2019년 7-8월호